2015년 10월 25일 일요일

[북한읽기] 북한 경제의 괄목상대, 평양이 평해튼으로

조동호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원장
입력 : 2015.10.26 03:00

평양 곳곳 고층건물, 외제 상점… 맨해튼 합성한 '평해튼' 별명도
市場 확산되며 체제는 붕괴 위험 '도움되는 장마당, 안되는 노동당'
北 주민들 사이 비아냥도… 北 경제 비중 높이도록 유도해야


조동호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원장 사진
조동호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 원장
평해튼, 평양과 맨해튼(Manhattan)의 합성어. 요즘 평양에 상주하는 외국 대사관 직원들과 국제기구 관계자들은 평양을 이렇게 부른다. 익히 알려졌듯이 맨해튼은 뉴욕의 핵심이자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월스트리트로 상징되는 세계 금융과 비즈니스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그런 맨해튼을 평양에 갖다 붙인 것이다. 그만큼 평양의 경제가 놀랄 만큼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곳곳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어쩌다 차 한 대 지나가던 거리에 교통 체증이 빚어지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과 대규모 외제 상점도 한두 개가 아니다. 평양만의 상황이 아니다. '혁명의 수도' 평양만큼은 아니지만 지방 경제도 호전되고 있다. 배불리 먹지는 못해도 아사(餓死)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 정도는 됐다. 북한 경제 분석에 지나치게 신중한 한국은행조차 지난 수년간 북한 경제가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다고 추정한다.

그러나 경제 상황 개선이 북한 당국에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시장 확대가 경제 호전의 핵심 요인이기 때문이다. 시장에서의 부의 축적을 없애겠다는 것이 사회주의이고 수요와 공급의 불안정성을 막겠다는 것이 계획경제인데, 북한 현실은 이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나고 있다. 국가가 아니라 시장에서 크게 돈을 번 '돈주'들이 경제 운영의 주인이다. 이들은 국가기관의 명의를 빌려 아파트를 짓고 분양을 통해 돈을 번다. 형식적으로는 국가의 건설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개인이 짓고 개인이 소유한다. 제조업도 그렇고 수산업도 마찬가지다. 국가기관의 어선을 빌려 개인이 조업을 한다. 당연히 번 돈의 일부는 지배인과 관련 공무원들에게 뇌물로 준다. 외양은 사회주의지만 내용은 자본주의다.

그러다 보니 계획경제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시장에서의 경제활동 자체가 '계획 밖'에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컴퓨터나 휴대폰으로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하는 전자상거래도 시작됐다. 개인에게 물품을 할당하는 계획경제는 이미 사라졌다. 국가 배급망에는 물품이 없어도 시장에서 자유롭게 원하는 만큼의 물품을 사는 경제가 된 것이다.

자연스레 북한 주민은 경쟁에 익숙해졌다. 시장에서는 누구보다 먼저 다른 사람보다 많이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식 사회주의'의 자랑이었던 평등은 낯선 단어가 되었다. 고려항공택시라는 회사는 '최대의 안전성과 성의 있는 봉사'를 보장할 테니 '널리 리용'해 달라는 광고도 한다. 경쟁은 필연적으로 격차를 만들어 낸다. 탈북자 조사에 따르면 북한 하위 계층의 월 생활비는 북한 돈으로 6만원 정도인데 상위 계층은 116만원에 이른다. 우리보다도 더 심한 양극화이다.

경제는 좋아지고 있는데 체제 자체는 붕괴하고 있는 아이러니. 그것이 바로 현재 북한 당국이 직면한 딜레마이다. 북한에는 당이 두 개 있는데, 도움되는 장마당과 도움 안 되는 노동당이라는 주민들의 비아냥까지 나온다. 그렇다고 시장이 워낙 커져서 없앨 수도 없다. 시장의 효율성을 경험한 데다가 이젠 시장이 삶의 터전이 된 주민들이 시장의 폐쇄를 그저 지켜만 보고 있을 리도 만무하다. 더욱이 생전 처음 겪어보는 양극화에 하류층의 불만은 상당한 수준이다.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이 그 숱한 무기들을 바라보면서도 핵과 미사일 대신 '인민 사랑'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김정은 시대의 슬로건인 경제와 핵의 병진 노선이 경제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북 전략도 재검토되어야 한다. 북한의 병진 노선이 핵개발 목적이라고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자꾸 경제의 비중을 높여가도록 유도해야 한다. 조만간 재개될 남북 경협도 북한의 시장 확대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렇게 원하던 북한 경제의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정책적 호기가 다가온 것이다. 남북 관계 역사상 처음으로.

원문 조선닷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0/25/20151025024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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