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분페이 1954년 8월 20일 서면 자백서이다. 그는 1920년 출생했고 일본 사이타마현 사람이다.
1940년 일본군 중국 침략 전쟁에 참가했고 1945년 8월 체포됐다.
1941년 9월, 산둥성 라이우현에서 "산지에서 피난하고 있는 한 40세 가량의 중국 농민"을 "보총으로 3발 쏴 죽였다".
1941년 9월, 라이우현에서 각 중대는 "100가구에 불을 질렀다. 방에 있던 노인, 환자 및 아동을 비롯한 50명이 불에 타 죽었다." 그는 "2가구에 직접 불을 질렀고" 그날 화재로 사망한 50명 중 한 여성은 그가 불을 지른 "방에 누워 있다 타죽었다".
1942년 9월, 산둥성 장추현에서 일당과 함께 감금했던 3명의 중국 농민을 미리 파놓은 웅덩이로 데리고 가서 2명 일당은 "군도로 각각 한명씩 죽였고" 다른 한명은 그가 "날창으로 찔러서 죽였다".
1943년 10월, 산둥성 화이런진 부근 저지에 데리고 간 중국 농민을 대대장은 "밴드로 농민의 눈을 가려라"고 명령했다. 수의관이 "군도로 한명을 찔러 죽였다", "기타 8명은 …신병들이 날창으로 찔러 죽였다", 그날 사망한 9명중 한명은 그가 대원에게 "찔러 죽여라"고 명령했다.
1943년 6월부터 1944년 3월 사이, 산둥성 러링현에서 "21~ 23세의 2명 중국인 여성을 위협해 15번 강간했다".
1944년 11월, 산둥성 잔화현에서 2명 분대대원을 시켜 "중국 민가에 침입해 2명의 중국인 여성을 강간"하게 했다.
1945년 1월, 후이민현에서 대대장은 각 중대를 지휘해 농민(홍창회원)을 공격하게 했다. "20명을 사살했다", 그는 "5명의 분 대원을 지휘해" "사망한 20명 중 2명"을 사살하게 했다.
1945년 2월, 산둥성 리진현에서 민가에 침입해 저항하는 한 할머니를 부근의 웅덩이로 끌고 가서 "몽둥이로 그녀의 머리를 서너번 힘껏 내리친 다음 발로 차 웅덩이에 떨어지게 했다", "이 할머니를 살해했다".
또한 분 대원들이 민가에 침입할 것을 명령하고 "말에게 먹이는 수수를 강탈했고 이 민가에 있던 한 여성을 강간하려 했으며 그녀를 위협할 때 옆에서 깜짝 놀라 기겁하는 애”를 “머리를 아래로 김치독에 던져 살해했다".
1945년 3월 10일, 산둥성 칭청현에서 2명의 부하를 지휘해 "도망가는 농민을 말을 타고 뒤쫓아가 그를 노끈으로 묶었다", 한 부하를 시켜 "말위에서 끈을 당기면서 뛰었는데 30 여 미터 달리다가 이 농민을 학살했다."
1944년 6월부터 1945년 5월 사이, 산둥성 후이민현에서 "20~23세의 2명 조선 여성을 위협해 9번 강간했다".
원문 신화통신 http://kr.xinhuanet.com/2015-09/07/c_134597472_3.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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