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25일 토요일

北, 검소와 헌신의 상징 '백선행' 소개

승인 2015.07.24  17:36:44  |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원문 통일뉴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934

 
▲ 북한에 위치한 '백선행기념관'. 북한은 백선행을 검소와 헌신의 상징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사진출처-내나라]

북한이 일제시대 당시 검소한 생활로 사회사업에 헌신한 백선행을 소개했다.

북한 웹 사이트 <내나라>는 23일 평양 대동강변 연광정 옆에 위치한 '백선행기념관'에 대한 글을 실었다.

백선행기념관은 550여㎡ 부지에 1천770여㎡ 연건축면적의 3층짜리 석조건물로, 1928년에 세워졌으며, 당시는 '평양공회당'으로 백선행이 직접 세웠다.

1층에는 휴게실, 도서실과 2층, 3층에는 회의실과 예술공연장이 마련되어 있으며, 기념관에는 백선행 반신상과 '백씨선행기념비'가 있다.

사이트는 "백선행기념관은 근로자들과 청소년들을 위한 문화생활의 거점으로 이용되고있으며 국보유적으로 등록되어 국가적 관심속에 보존관리되고있다"고 소개했다.

  
▲ 백선행 반신상. [사진출처-내나라]
백선행(1848-1933)은 평양 출신으로 자선사업으로 유명했다. 그에 대해 남측에서는 수원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선행은 14살에 결혼한 뒤 2년이 못되 남편이 죽자 친정집으로 돌아와 생활했다. 80세가 될 때까지 콩나물장사, 두부장사 등을 하면서 돈을 모았고, 1908년 대동강 솔뫼다리(현 백선교) 공사에 기부하면서 사회사업이 시작됐다.

그는 광성소학교, 창덕학교, 숭의여학교 등에 토지를 기부했으며, 일제 조선총독부가 상을 주려고 했으나 거절했다.

백선행과 관련한 대표적인 일화는 '만달산(일명 돌박산) 일화'로, 백선행이 부자라는 소문을 들은 한 사기꾼이 만달산을 싸게 팔았고, 이 산이 초목이 전혀 자라지않는 지역임을 알게됐다.

이에 백선행은 한 일본 자본가에게 본전의 몇 십배가 되는 비싼 값으로 팔아넘겨 막대한 이득을 얻었고, 당시 평안도 일대에 손꼽히는 부자가 됐지만, 근면하고 검소하게 생활했다. 하지만 그가 판 산은 석회암 지대로 일본인은 이 곳에 시멘트회사를 세웠고, 훗날 승호리시멘트공장이 됐다.

그에 대해 북한은 애국심이 없고 인색한 자본가의 모습과 대비시켜 좋은 자본가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백선행이 토지를 기부한 '창덕학교'는 김일성 주석의 외삼종조부인 강량욱이 세운 학교이다.

김일성 주석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백선행을 두고, "해방 전에 평양에서 자선사업으로 이름이 높던 여자"라며 "사람들이 백선행을 존경한 것은 그가 사회를 위해 유익한 일을 많이 하였기때문"이라고 언급했다.

  
▲ '백씨선행기념비'. [사진출처-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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