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0일 목요일

[해방 70주년] "소련군 미국의 청탁으로 일본군과 전투, '한반도 해방'에 큰 공헌"

[해방 70주년] 소련군 미국의 청탁으로 일본군과 전투, '한반도 해방'에 큰 공헌
© Sputnik/ Anatoliy Garanin

2015.08.14 23:32(최종수정 2015.08.19 23:53)


8월 15일 한국, 조선(북한)에서 각각 일본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난 해방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를 갖는다. 이 날은 과거 소련 붉은군대에 있어서도 의미 깊은 날이다. 1945년 8월 독일과의 전쟁으로 수백 만의 아들, 딸들을 잃고 초토화된 구소련은 연합군의 청탁으로 새로운 전투에 참전하게 된다. 일본 제국주의 마지막 잔영을 초토화하고 극동 지역국들에 오랫동안 기다려온 자유를 안겨줄 새 전투에 참전했다.


일본 관동군을 맞이해 소련군 다수가 사망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만주전에서 일본 지상군을 무릎 끓리며 소련군은 결국 일본 군국주의 의지를 꺽은 채 한국 해방에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한반도 분단과 냉전은 일련의 고정 관념을 만들며 심지어 역사적 진실마저 왜곡시켰다. 한반도 해방에 소련군이 세운 공헌 대해 알렉산드르 제빈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극동문제연구소 한국연구센터장이 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에서 공개했다:

"미군은 1945년 9월 8일 한반도 남쪽에 상륙했다. 다시 말해 일본이 항복을 선포하고 무조건 항복 협정에 서명한 이후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2차 대전 종식과 일본 군국주의를 파멸하고 한반도를 해방시키는데 큰 공을 세운 소련군의 역할을 깎아내리는 설이 해마다 한국 언론에 돌고 있다.

소련이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척한 상황'을 마치 이용해 손쉽게 극동 지역 파이 조각을 취하려 한다는 이 분명치 않은 역사 해석은 역사적 사실에 전적으로 부합되지 않는다. 진정한 역사적 사실은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청탁으로 소련군이 일본군과의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는데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미군은 소련군이 합류하지 않는다면 일본을 항복시키는데 보다 큰 희생이 치러질거라는 계산을 미리 했다'고 알렉산드르 제빈 한국연구센터장은 말한다:

"미국은 만일 일본이 본국으로 돌아가 만주, 한반도에 위치한 일본군들을 집결시킬 경우 전쟁이 1년 더 소요될거라 계산했다. 그렇게 되면 일본 열도 상륙시 100만 여명의 미군 인명 피해가 예상됐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소련군이 일본군을 격퇴해 더 이상 사건이 확대되지 않기를 바랬다.

얄타회담 선언문에서 연합군 청탁으로 소련군이 일본과의 전쟁 참여가 서명되었다. 서명된 내용대로 5월 9일 유럽 전쟁에 승리한 지 정확히 3개월 후 소련군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이 모든 사실들이 얄타, 포츠담에서 진행된 연합군 회의 국제 문서 내용에 있다. 국제 정상들의 서신왕래 내용안에도 엿볼 수 있다. 이외 다른 설들은 거짓이다. 그 어떤 역사적 근거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70주년 승전과 관련해 또 다른 역사 해석이 있다. 한반도 해방과 분단을 묶으려는 시도로 역사적 사실과 그 관련 증거 문서들은 이 해석이 거짓된 논제임을 말해 준다. 이에 대해 알렉산드르 제빈 러시아 전문가와의 2차 인터뷰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원문기사 보기: http://kr.sputniknews.com/opinion/20150814/513223.html#ixzz3jLRmLF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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