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18일 화요일

8월 13일 소련군 한반도서 일본군 패배 결정적 역할한 청진상륙작전 실시

8월 13일 소련군 한반도서 일본군 패배 결정적 역할한 상륙 작전 실시
© Sputnik/ Georgy Khomzor

2015.08.13 19:32(최종수정 2015.08.17 17:58)

1945년 8월 13일 이반 유마셰프 사령관 지휘 아래 태평양 함대 소일 전쟁 가운데 '청진상륙작전'이 실시됐다.

이 작전의 목적은 한반도 북부 연안 청진시에 소재한 일본 해군 기지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일본 해군 기지에는 일본 제국 육군 주력 부대 가운데 하나인 관동군이 자리잡고 있었다.

주둔지에는 중위인 소키티 니시바키와 케이사쿠 무라카미가 지휘하는 해군 기지 3개 부대 등 일본 군 4천명이  방어선을 치고 있었다.

소련 태평양 함대 해병대는 13 여단장 바실리 투루신 소좌 지휘 아래 작전을 실시했다. 배로부터의 상륙은 스투제니치니코프 군 중좌가 지도했다.

상륙 및 화륙 지원에는 12척의 상륙함 7척의 원양 구축함, 기뢰 부설함, 8척의 순찰함, 6척의 잠수함 보트와 18척의 어뢰 보트가 작전에 참여했다. 상공에서는 태평양함대 해군의 250여기의 전투기와 폭격기가 지원했다.

200여 명으로 구성된 선봉 부대의 상륙과 어뢰 보트는 적들에게 뜻밖이었다.  상륙 작전 첫 째날 항구에서는 상륙 작전이 활발히 진행됐으며 도시 구역으로 바짝 다가섰다. 8월 14일과 15일 청진 항구에는 2개 대대 6천 여 명 이상의 주요 육전 부대원들이 상륙했다.
이반 치스치코프 사령관이 지휘하는 제1 극동전선 25여 군부대가 도시로 다가갔다. 이들은 이 시각 청진 시의 많은 지역을 점령한 육전대를 지원했으며 해군 기지를 장악했다. 그리고 작전은 끝났다. 관동군은 붉은 군대에 맞서 방어 조직 구성을 위해 병력을 철수하며 일본섬을 차단했다.

청진를 점령하는 가운데 500여 일본군이 사망했으며 2,500명이 포로가 됐다. 소련 해병대의 경우 300명이 사망했다.

원문기사 보기: http://kr.sputniknews.com/society/20150813/508127.html#ixzz3j9iirnwY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