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5일 수요일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했던 이유는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소련에 내주지 않으려는 속셈에서였다"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했던 이유는 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소련에 내주지 않으려는 속셈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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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4 23:33(최종수정 2015.08.04 23:42)

올해면 1945년 8월 6일과 9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70주년이다. 미국은 전쟁 범죄로 간주되는 행위에 대해 아직도 사과하지 않았다.

미국의 공식 입장은 핵폭탄 투하로 일본의 항복을 재촉하고 미국군과 평화적인 일본인들 수십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예를 들어 일본계 미국인 역사가 츠요시 하세가와는 이 문제를 좀더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일본연구센터장 발레리 키스타노프는 지적하고 있다:

"Racing the Enemy라는 자신의 책에서 츠요시 하세가와는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무조건적으로 항복하도록 한 것은 핵폭탄이 아니라 소련의 전쟁 개입이었다고 결론 맺었다. 일본이 미국과의 회담에서 수용할만한 조건 하에서 항복하려고 누구보다 소련을 중재자로 염두에 두고 있었던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다. 그러나, 소련의 전쟁 개입 희망이 산산조각 났다. 런던의 왕립군사박물관 역사가인 케리 체맨은 원폭 투하에도 불구하고 히로시마에서 14만명, 나가사키에서 8만명이 사망했으며, 일본 군사지휘부는 만주와 한국에 대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연맹군들의 침략을 격퇴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곳에는 강하고 잘 훈련받은 관동군이 위치하고 있었으며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자원들이 있었다. 그러나, 때마침 소련의 전쟁 개입과 만주 침략은 허사가 됐다. 학자들은 그 당시 핵폭탄 투하의 필요성은 분명히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그 밖에도 태평양함대 사령관 같은 일부 미국 장군들은 1945년 핵폭탄 투하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루먼과 그의 고문들은 일본 두 개 도시에 핵폭탄을 투하하겠다고 역사적인 결정을 내렸다."

트루먼과 그의 고문들은 일본의 강제 항복과는 완전히 다른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 미국과 소련 사이에 '냉전'의 징후가 처음 나타났다. 2차 세계대전 말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폭탄은 '냉전'의 첫 작전이었다고 발레리 키스타노프는 말한다:

"원폭 투하는 현재 미국의 병기고에 전례없는 파괴력을 가진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구소련에 보여주고자 하는 주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6월 2일자 일본 아사히 신문의 최근 기사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 투하를 승인한 트루먼 대통령의 이런 동기를 확인해 주고 있다. 아사히 신문에 쿠즈닉 미국 과학자의 인터뷰가 게재되어 있다. 기자는 그에게 직접적으로 질문했다.

"원폭 투하의 실제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트루먼 대통령은 러시아가 전쟁에 참여하고 미국이 얄타 회담에서 약속한 양보를 얻어 내기 전에 전쟁을 끝내기 원했다는 것이 과학자의 결론이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얄타 회담의 결과로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 전체가 구소련에 복귀되어야 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일본이 항복하는 경우 스탈린에게 사할린이나 쿠릴 열도를 돌려 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려진 바와 같이, 그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원폭 투하 이후 조차도 일본 군부는 전쟁을 계속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국 조차도 원폭 투하가 일본에게 투하되는 마지막 폭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구소련이 선전 포고를 하고 만주에서 전쟁을 시작한 후에도 일본은 항복하도록 강요를 받았다. 보관된 문서들이 공개될 때 객관적인 관점이 보다 폭넓게 대중에게 알려지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과 여러 국가들에게 대중적이 될 것이다."

전쟁 후 일본은 오랫동안 사실상 미국의 점령 하에 있었으며, 경제적 예속 하에 있었다. 미국은 전쟁 후 서유럽 복구를 위한 마셜 플랜과 유사한 프로그램을 일본을 위해 마련했다. 이 프로그램으로 일본의 경제 기적이 상당 부분 일어나게 됐다. 워싱턴 정부 입장에서 이것은 실제적으로 이타적인 것이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중요한 군사 정치 동맹자가 되었다. 이런 여건에서 일본과 미국의 정치가들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를 기억하는 것은 불편한 것이었다. 원폭 투하와 관련한 기념 행사를 진행하면서도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서 누가 이런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기억을 점차적으로 지워가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은 확실히 일본-미국의 관계에 이득이 될 것이다.

원문기사 보기: http://kr.sputniknews.com/opinion/20150804/481157.html#ixzz3hxKU4kV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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