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8/17 15:55
【평양 교도】종전 전후의 혼란기에 현재의 북조선(북한)에서 병과 영양실조로 사망해 평양의 룡산묘지에 매장된 일본인 유족들로 구성된 ‘평양 룡산회’ 성묘단 6명이 16일, 현재의 매장지인 교외 구릉지를 방문했다. 6명 가운데 유족은 4명. 묘표를 세운 흙더미에 손을 모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겨우 오게 됐다” “두 번 다시 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라며 각자의 가슴속을 털어놨다.
히로시마현 미하라시(広島県三原市) 거주 이리에 야스코(入江安子, 73) 씨는 유일하게 남은 가족사진을 들고 돌아가신 아버지 미노루(実) 씨의 출신지 후쿠시마현(福島県)의 쌀을 공양하면서 “겨우 오게 됐습니다”라고 보고. “사실은 어머니가 살아계신 동안에 오고 싶었지만 천국에서 만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종전 전 함경북도 북동부 청진에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소집된 후 행방불명돼 어머니, 누나들과 함께 평양에 도착한 요코하마시 도쓰카구(横浜市戸塚区) 거주 나가시마 야스오(長島康夫, 78) 씨는 학교 체육관 등의 수용소에서 1년 정도 생활했다. 1946년 봄에 17살로 세상을 떠난 누나 유키코(悠紀子) 씨의 시신을 짚으로 덮어 짐수레와 같은 것으로 실어서 옮기는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자신이 북한을 방문해 성묘한 것은 이번이 2번째. “유족들이 2번, 3번 성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旧) 만주(満州)•신징(新京)에서 일본으로 귀국할 때 3살 된 남동생을 잃은 지바현 후나바시시(千葉県船橋市) 거주 아라이 마스미(新井マスミ, 76) 씨는 “어머니는 입원 중이어서 내가 동생을 돌봐줬다. 겨울이었기 때문에 너무 추웠고 무서웠다”고 당시를 돌이켜본다.
“남동생은 왜 자신이 죽는지 모르는 채 죽어갔다. 두 번 다시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된다”고 목멘 소리로 말했다.
효고현 니시노미야시(兵庫県西宮市) 거주 와타나베 나오코(渡辺直子, 57) 씨는 2살에 사망한 숙모 도시코(敏子) 씨와 함께 일본에 돌아오지 못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억울함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고 말하며 “부디 평화롭게 잠드세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원문 교도통신사 http://www.47news.jp/korean/korean_peninsula/2015/08/12087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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